K드라마 속 무당 (친근함, 해외반응, 진화)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한국을 찾는 여행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출처: 이데일리 뉴스) 저승사자가 아이돌처럼 칼군무를 추고, 무당이 악귀를 노래로 물리치는 설정이 해외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겁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이게 먹히겠나?" 싶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 세계가 K무당에 열광하고 있더군요. 한국인인 제게는 너무나 익숙한 소재가, 해외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판타지로 다가간 겁니다.

K드라마 속 무당


한국인에게 무당은 '믿음'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 때마다 "여기 깨끗해야 복이 들어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동지에는 팥죽을 꼭 쑤시고, 이사 갈 때는 날짜를 따지십니다. 그런데 웃긴 건 어머니가 본인은 "무속신앙 안 믿는다"고 단언하신다는 겁니다. 이 모순이야말로 한국인과 샤머니즘(Shamanism) 관계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샤머니즘이란 자연과 영혼을 숭배하며 무당이 인간과 신령을 연결한다고 믿는 원시 종교 체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귀신·조상·산신령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소통하는 문화인 셈이죠.

많은 한국인에게 무속은 종교라기보다 '생활 기술'에 가깝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사주카페는 예약으로 북적이고, 시험 전에는 엄마들이 절에 가서 기도합니다. 믿지 않는다면서도 안 하면 찝찝한 거죠.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금기와 징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같은 말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무당이 부적을 던지고 굿판을 벌이는 장면이 나와도 한국인은 낯설지 않습니다. "아, 그 느낌"으로 바로 이해되는 거죠.

제가 드라마를 볼 때 무속 장면이 나오면 묘하게 친근합니다. 저 역시 샤머니즘 소재를 흥미로워하는데, 그건 아마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들이 화면에서 재가동되는 느낌 때문일 겁니다. 무당은 사기꾼이면서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존재입니다. 점사가 다 틀리는 무당은 우스꽝스럽게 나오지만, 예언이 적중하는 무당 앞에서는 시청자도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게 됩니다. 이 양가성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차지한 위치를 정확히 보여줍니다(출처: 중앙일보).

해외 시청자는 '친근함' 대신 '규칙의 결핍'을 경험합니다

레딧(Reddit) K드라마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반응들이 쏟아집니다. 'Head over Heels' 온에어 토론 스레드에서는 "재미는 있는데 규칙이 복잡하다"는 댓글이 주를 이룹니다. 악무당과 선무당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빙의(憑依)가 정확히 무엇인지, 부적은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빙의란 귀신이나 신령이 사람의 몸에 들어와 그 사람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캐릭터가 갑자기 다른 목소리로 말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죠.

특히 'Café Minamdang' 에피소드 토론에서는 간판을 읽는 방식 자체가 장벽이 됐습니다. 한 시청자는 세로쓰기로 배치된 간판 문구를 종교 기도문으로 오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당 문화 자체보다 "간판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같은 로컬 코드가 문제였던 겁니다. 또 다른 스레드에서는 무당과 의뢰인 관계에서 왜 특정 인물이 무당에게 종속되는 듯 보이는지, 그 강제력이 믿음인지 협박인지 관습인지 납득되지 않는다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 이 간극은 한국인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는 '암묵지'가 해외 시청자에게는 '설정 퍼즐'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당이 등장하면 자동으로 "아,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기겠구나" "이제 굿으로 해결하겠지" 같은 서사 흐름을 예측합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그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거죠. 'Joseon Exorcist' 취소 논란처럼, 무당 의상이 중국식 여사제처럼 보이게 연출됐을 때는 "무당이 나왔다"가 아니라 "한국 문화를 제대로 재현했는가"가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결국 해외 시청자는 규칙과 맥락을, 한국 시청자는 재현의 진정성을 각각 다른 차원에서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K오컬트 속 무당, 억압에서 슈퍼히어로로 진화하다

과거 KBS '전설의 고향'(1977~1989)에서 무당은 조연이거나 악당으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무당의 이미지는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을 받은 네이버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의 MZ세대 무당 이화림, 드라마 '귀궁'과 '견우와 선녀'의 소녀 무당까지. 이제 무당은 여성 수퍼히어로이자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K오컬트는 오컬트에 판타지 액션, 로맨스, 사극, 학원물 등을 혼합해 서구 오컬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색깔을 띤다"고 분석했습니다. 오컬트(Occult)란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 특히 귀신·마법·주술 같은 비과학적 영역을 다루는 장르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소재로 한 콘텐츠라고 보면 됩니다. 서구 오컬트 영화가 공포와 불쾌함을 강조한다면, K오컺트는 귀신조차 인간적 한과 소통 욕구를 가진 존재로 그립니다. 무당의 굿도 서구의 구마 의식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달래서 보내주는 방식이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은 "굿은 음악과 춤으로 요괴를 물리치는 것이라 영화 콘셉트와 딱 맞았다. 어떻게 보면 굿이 최초의 콘서트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샤머니즘박물관 양종승 관장은 "한국인의 삶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원형적 설화가 바로 무속"이라며 "21세기 들어 과학 발전으로 오히려 미지의 영역이 늘면서 무속이 재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억압됐던 전통이 이제 창조의 자원으로 전환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위험도 느낍니다. 무당이 '힙한 슈퍼히어로'로만 소비될 때, 무속은 다시 이국적 소품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최근 K드라마에서 무당이 등장하는 주요 방식입니다:

  1. 판타지·미스터리 장르의 장치로 쓰이며 신선함과 혼란을 동시에 제공
  2. 여성 수퍼히어로·해결사 역할로 서사 중심에 배치
  3. 한국 전통문화의 시각적 상징으로 활용되나, 때로 맥락 없이 미학만 강조

우리는 왜 안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그 세계를 호출할까요? 무속의 카리스마를 의심하면서도 드라마 속에서 원하는 건 결국 예언과 확정성 아닐까요? 이 질문을 붙잡으면, 무당은 '초자연'이 아니라 현대인의 불안·관계·권력 감각을 비추는 가장 현실적인 거울이 됩니다.

K드라마 속 무당은 이제 단순한 미신 캐릭터가 아닙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불안 다루기 습관이자, 해외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판타지 장치입니다. 다만 이 간극을 메우려면 작품 안에서 규칙을 명확히 제시하고, 무속을 단지 시각적 소품이 아닌 서사의 뿌리로 다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K오컬트는 전 세계 시청자와 진짜 소통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앞으로 나올 작품들이 무당을 어떻게 그려낼지, 또 다른 문화적 전복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지켜보려 합니다.

--- 참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9184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K-로맨스의 힘 (회피형 애착, 정서적 리얼리즘, 문화적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