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제주 문화 (해녀, 무속, 여성 권위)
외국인 친구들과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난 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해녀의 역할, 무당의 권위, 여성들이 경제 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까지 친구들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저도 한국인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제주 문화가 얼마나 독특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폭십 속았수다 속 제주 문화가 왜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해녀와 무속신앙, 그리고 제주 여성의 권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제 경험과 함께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제주 해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생존의 기술
드라마 속 광례와 애순을 보면서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건 "왜 여자들이 바다에 들어가서 일하는가"였습니다. 해녀(海女)라는 단어 자체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전통 시대에는 '잠녀(潛女)'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18세기 이후 남성 인구가 줄어들면서 여성들이 어패류 채취에 본격적으로 투입됐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해녀의 모습으로 정착됐습니다(출처: 제민일보).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제주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가 목동이었는데, 해녀 일은 그보다 10배 이상 고됐다고 합니다. 잠수복도 없이 속옷만 걸치고 물에 들어갔던 해녀들은 당시 '야만인'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해녀들이 벌어오는 수입이 가정 전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경제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애순이 오징어잡이 배 선장과 조건을 흥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애순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거래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주 해녀들은 바다를 '바당밭'이라고 부르며 육지의 밭처럼 소중히 가꿔왔습니다. 해녀 공동체는 '금채(禁採)'와 '갯닦기' 같은 자율적 제도를 통해 수산 자원 채취를 제한하고, 어장 청소를 통해 해조류와 어패류가 원활하게 자랄 수 있도록 관리했습니다. 이런 공동체 기반의 자원 관리 방식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서 드라마 속 해녀들의 물질 장면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들의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제주 무속신앙과 심방의 권위
친구들이 두 번째로 많이 물어본 건 막천 같은 무당의 존재였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친구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며, 무당이 공동체 안에서 이렇게까지 큰 권위를 가질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제주는 '만 천 신들의 섬'이라 불릴 만큼 무속신앙이 깊게 뿌리내린 곳입니다. 2015년 기준 제주 전체의 신당(神堂)은 49개로, 한 마을당 최소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 있었고, 심방(心房)이라 불리는 무당도 총 227명에 달했습니다. 제주 인구 3,000명당 한 명 꼴입니다.
제주도에서 무속신앙이 이처럼 발달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척박한 자연환경과 잦은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유교 문화가 육지보다 덜 자리 잡아 원시적인 신앙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 조선 후기 약 200년간 출륙 금지령으로 육지와 왕래가 끊기면서 전통 신앙이 잘 보존됐습니다.
제주의 심방은 단순히 굿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화 전승의 주체였습니다. 본풀이(本-), 즉 신의 내력을 구송하는 서사무가(敍事巫歌)는 심방들에 의해 대대로 전해졌고, 이들은 의례를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제주의 굿은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입춘굿(立春-)은 제주 시내부터 서귀포까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행되고, 제주 큰굿은 15일간 30여 개의 굿을 이어가는 메가 규모입니다. 이는 국가 무형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저는 드라마 속 막천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굿을 주재하는 장면을 보며, 제주 무속이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공동체의 불안과 운명을 다루는 실질적 권위 체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막천은 기이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며 마을의 안녕을 책임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이런 심방의 역할은 제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제주 여성의 권위, 생존이 만든 주체성
폭싹 속았수다의 여성들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드라마가 여성을 "강한 캐릭터"로 소비하지 않고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주체로 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광례의 물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경제 활동이고, 애순이 "내가 나가서 벌면 되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특별한 선언처럼 보이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말에는 여성의 자립이 이념이 아니라 생활 감각으로 자리 잡은 세계가 담겨 있었습니다.
제주 여성들의 경제권과 자기 결정권은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습니다.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교화가 덜 진행됐고, 모계(母系) 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집안일만 하지 않고 밖에 나가 노동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경제권과 발언권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는 노부부가 안채에, 결혼한 아들 내외가 바깥채에 살면서도 부엌과 장독대를 따로 두고 경제 활동을 독립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는 육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생활 문화였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제주 여성들은 강한 생활력과 독립심 덕분에 80세 이상 장수 노인 중 여성 비율이 80%를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여성의 강함을 "수퍼우먼형 아내"로 칭송하는 시각은 자칫 또 다른 이상적 여성상으로 소비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 여성들의 주체성은 낭만적인 미덕이 아니라, 척박한 자연환경과 불안정한 생존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게 강해지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역사가 그들을 만들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가 인상적인 이유는 제주 여성을 신비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고단함 속에서 권위를 만들어낸 존재들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아름답게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과정에서 강해진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여성의 삶을 훨씬 더 현실적이고도 깊게 그려냅니다.
외국인 친구들과 드라마를 보며 나눴던 질문들은 제게도 제주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라, 제주라는 공간이 어떻게 여성에게 생계의 책임과 공동체의 역할, 상징적 권위까지 부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제주의 해녀 문화, 무속신앙, 여성의 권위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관심이 단순한 신비화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진짜 삶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 비교 항목 | 제주 (해녀) | 육지 (전통 관습) |
|---|---|---|
| 경제 주체 | 여성이 직접 생계 자원 채취 및 거래 주도 | 남성 가장 중심의 가계 운영 |
| 가족 경제 | 부모-자녀 세대 간 독립적인 경제 운영 | 가부장 중심의 통합 경제 체계 |
| 사회적 지위 | 생계 부양자로서 높은 발언권과 주체성 | 내조 중심의 보조적 역할 |
참고문헌
권태효, 「제주도 일반신본풀이에 나타난 여성신의 성격과 양상」, 『한국무속학』, 2011.
이향애, 「제주 무속 신화 속 쫓겨난 딸들의 신직 좌정과 문화적 의미」, 『기호학연구』, 2020.
김영주·이수진, 「제주여신신화에 투영된 여성들의 통합적 사유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사상과 문화』, 2017.
참고
폭싹속았스다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https://about.netflix.com/ko/news/when-life-gives-you-tangerines-trailer
제주도에서는 왜 굿을 많이 할까? https://youtu.be/e1jwmW2KHmw?si=ovf5Gqa8QqLJaR7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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