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극 〈정년이〉 (여성 무대, 남장 배우, 전성기)
드라마 〈정년이〉를 외국인 친구와 함께 보다가 계속 화면을 멈추고 설명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왜 여자들만 나와?" "남자 역할도 여자가 해?" 친구의 질문을 받으며 저는 제가 한국문화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성국극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1950년대 여성들이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남장을 하며 공연했던 여성국극은 단순한 공연 장르가 아니라, 남성 중심 예술계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문화운동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여성들이 직접 만든 무대
여성국극은 1948년 10월 〈옥중화〉 공연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명창 박녹주를 중심으로 결성된 여성국악동호회가 주도한 이 공연은, 해방 직후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던 국악계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습니다. 박녹주는 1974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남자들이 이끄는 예술단체에서 여성들은 퍽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동이 돼서 순전한 여성단체를 만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성국극은 창극(唱劇)에서 분화된 장르입니다. 창극이란 판소리의 창법을 기본으로 하되, 여러 창자가 배역을 나눠 맡아 노래·춤·연기를 함께 펼치는 종합 공연 예술을 뜻합니다. 해방 직후 '창극'은 '국극(國劇)'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일제로부터 독립한 후 주체적 국가로서의 문화 정체성을 세우려는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국극협회, 국극사 등 해방 이후 결성된 단체 명칭에 '국극'이 포함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성국극은 국극과 형식은 같지만, 모든 배역을 여성이 맡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남성 역할도 여성이 남장을 하고 연기했으며, 판소리의 정형화된 창법 대신 각 작품에 맞춰 목소리와 발성을 조절하는 '연극 소리'를 사용했습니다. 첫 공연 〈옥중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1949년 2월 선보인 〈햇님과 달님〉은 1년 넘게 전국을 순회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햇님과 달님〉은 오페라 〈투란도트〉를 각색한 작품으로, 기존 판소리 레퍼토리와 다른 새로움이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남장 배우와 열성 팬덤, 전성기의 풍경
〈햇님과 달님〉의 성공 이후 1950년대는 여성국극의 전성기였습니다. 여성국극동지사, 햇님국극단 등 새로운 극단이 속속 생겨났고, 박녹주·박귀희·임춘앵 같은 배우들은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남장 배우는 여성국극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남성 역할을 여성이 연기한다는 점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당시 여성에게 제한되었던 권위와 존재감을 무대 위에서 재배치하는 문화적 실천이었습니다. 조선 말기 이후 신분 철폐와 여성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형성된 이념적 기반 위에서, 여성국극은 여성들이 직접 문화를 생산하고 주도하는 대중문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의 인기는 10여 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 급격히 쇠퇴한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제시됩니다.
- 새로운 레퍼토리의 부재: 극단 수는 늘어났지만 참신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며 관객이 떠났습니다.
- 인기 배우의 은퇴: 결혼 등을 이유로 주요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면서 전문 배우 수가 감소했습니다.
- 새로운 매체의 등장: TV와 라디오 보급, 국내외 영화 배급 확대가 공연 예술 전반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 정부 지원 부족: 1962년 국립국극단 창단 시 여성국극은 '대중적 통속극'으로 평가되어 배제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원인은 여성국극이 무형유산 관련 담론에서도 소외된 배경이 됩니다. 여성들이 만든 장르였고, 대중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가졌기에 전통예술의 정전 바깥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전통예술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역사
여성국극의 쇠퇴는 단순히 시대 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왜 여성국극이 제도권 전통예술의 중심에 편입되지 못했는가입니다. 여성국극의 역사에는 바로 이런 문화정치의 문제가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1962년 국립국극단이 창단되었을 때, 여성국극은 대중적 통속극으로 평가되어 국립기관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전통문화로서 여성국극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기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나아가 무형유산 관련 담론에서도 여성국극은 배제되었습니다. 여성들이 만들어낸 장르였기에, 그리고 대중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가졌기에, 여성국극은 오랫동안 전통예술의 정전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한국문화 안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역사가 당연하게 지워져 왔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국극은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습니다. 여성국극제작소는 직접 극을 제작하고 공연하며 여성국극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서이레·나몬 작가의 웹툰 〈정년이〉, 국립창극단의 창극 〈정년이〉, 그리고 이후 공개된 드라마 〈정년이〉까지,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등장할 때마다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친구에게 여성국극을 설명하던 그날, 저는 단순히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문화 안에도 이렇게 늦게 알아보게 되는 여성들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년이〉는 너무 오래 당연하게 지나쳐온 여성들의 무대를 다시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저는 감동보다 더 깊게 어떤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정년이〉가 다시 불러낸 여성국극의 의미
드라마 〈정년이〉는 여성국극을 낭만적인 복고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간 여성들의 욕망과 불안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작품입니다. 정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대에 들어오지만 곧 무대가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는 공간임을 깨닫고, 허영서는 재능과 훈련의 권위를 체현하며, 문옥경과 서혜랑은 각각 여성국극 내부의 선망과 위계, 불안과 권력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이 모두 '착한 여성'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며 밀어내지만, 동시에 인정하고 끌어올립니다. 이 복합성이 〈정년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여성의 세계를 순수한 자매애로 미화하지 않고, 여성들 역시 욕망과 권력, 생존의 언어 속에서 움직이는 주체로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정년이〉의 연대는 단순히 서로를 위로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구조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서로의 투쟁을 알아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여성국극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몇몇 뛰어난 배우의 성공담이 아니라, 남성 중심 예술 질서 속에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무대를 만들어낸 사건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스타가 되었고, 팬덤은 열광했으며, 여성국극은 전후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성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이자 주체로 등장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정년이〉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히려 잊힌 여성 예술의 계보를 현재의 언어로 다시 호출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며, 여성국극이 단지 여성들이 만든 특이한 공연 양식이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와 몸, 노동과 야망으로 구축해낸 하나의 문화운동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정년이〉는 한국문화의 층위를 읽게 만드는 드라마가 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여성국극의 역사와 드라마 「정년이」의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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