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흔적 찾기 (미생, 생존주의, 자산집착)
요즘 K드라마에서 IMF 외환위기의 흔적을 자주 발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불안하고, 왜 안정에 집착하며, 왜 《미생》 같은 드라마를 보며 가슴이 아픈지를 이해하려면 결국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덟 살이었던 1997년, 저는 경제 용어도 몰랐고 외환보유고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집안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고, 어른들이 자주 한숨 쉬었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때 그 공기가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뒤흔든 거대한 균열이었다는 사실을요.
IMF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었다
많은 젊은 분들이 IMF를 '국가 부도' 정도로 기억하시는데, 저는 실제로 그 시기를 겪은 부모 세대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Foreign Exchange Crisis)란 1997년 말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사건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나라 전체가 빚을 갚을 돈이 없어진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 사건이 무서운 이유는 경제 지표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한국인의 삶을 지탱하던 기본 전제들이 하나씩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한국 사회는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다', '회사는 나를 끝까지 책임진다', '중산층은 안정적이다'는 믿음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 이후 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일상화됐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증발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998년 한 해에만 실업률이 7%를 넘었고(출처: 한국은행), 이는 이전 몇 년간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습니다. 숫자 뒤에는 수많은 가족의 붕괴와 개인의 좌절이 숨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성인이 되고 나서 읽은 당시 신문 기사들이었습니다. 실직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들의 이야기, 유서에 남긴 '미안하다'는 말들. 그 미안함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폭력이었는데, 끝까지 자기 탓으로 돌려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IMF를 단순히 '지나간 과거'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건 지금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상처니까요.
미생이 보여준 IMF 이후의 노동 풍경
《미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히 '직장 드라마'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 작품은 IMF 이후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재현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장그래는 대기업 종합상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계약직'이라는 단어입니다. 비정규직(Non-regular Worker)이란 정규직과 달리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말합니다. IMF 이전에는 예외적이었던 이 고용 방식이, 이후에는 당연한 것처럼 확산됐죠.
제 주변에도 계약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늘 이야기합니다. "정규직 전환될 수 있을까", "계약 연장 안 되면 어쩌지", "다음 회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미생》이 많은 청년들에게 공감을 얻은 이유는 바로 이 불안이 너무도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장그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그를 '임시 인력'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합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IMF 이후 구조화된 노동 시장의 문제입니다.
드라마 속 회사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닙니다. 성과 중심의 평가, 끝없는 경쟁,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공포. 이 모든 게 IMF 이후 한국 기업 문화의 표준이 됐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3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출처: 고용노동부), 이는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미생》은 이 냉혹한 현실을 드라마적 서사로 번역했고, 그래서 우리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 자신의 불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 작품명 | 배경 / 설정 | IMF를 바라보는 시각 | 현재적 의미 |
|---|---|---|---|
| 《미생》 | 포스트 IMF (현대) | 고착화된 비정규직 시스템 | 시스템에 순응하며 버티는 개인 |
| 《태풍상사》 | IMF 발발기 (1997) | 무너진 시대 속 '기업가 정신' | 공동체와 신뢰의 회복 가능성 |
| 《언더커버 미쓰홍》 | 세기말 (1998~1999) | 금융 시스템의 탐욕과 붕괴 | 레트로 감성으로 즐기는 사회 비판 |
생존주의와 자산 집착, 그 뿌리를 찾아서
저를 포함한 90년대생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동시에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도 일찍 배웠습니다. 이 모순된 감각의 시작점에 IMF가 있습니다. IMF 이후 한국 사회는 근로소득만으로는 안정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산소득(Asset Income), 특히 부동산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산소득이란 일해서 버는 돈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소유해서 생기는 소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일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돈'이죠.
제 부모님 세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집은 꼭 사야 한다", "전세보다 월세는 손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들은 IMF 때 집을 잃거나 전세금을 날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은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마지노선처럼 인식됐습니다. 이런 감각이 자녀 세대에게까지 전달되면서, 오늘날 청년들 역시 '내 집 마련'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게 단순히 부동산 투기 심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IMF 이후 한국 사회는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졌고, 자산 격차가 곧 삶의 질 격차로 직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0년대 이후 소득 대비 자산 보유 비율 격차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즉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보다, 이미 가진 자산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가 된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합니다. 일만 해서는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명확하니까요.
K드라마가 IMF를 반복해서 소환하는 이유
최근 몇 년 사이 K드라마에서 IMF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태풍상사》는 1997년 IMF 속에서 무역회사를 살리려는 사장의 분투를 그렸고, 《언더커버 미쓰홍》은 세기말 증권가의 혼란과 금융 범죄를 다뤘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 직전 청춘들의 꿈과 가족의 붕괴를 감정적으로 재현했죠.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왜 지금 이렇게 불안한 사회에 살게 됐는가?"
일반적으로 레트로 콘텐츠는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IMF를 다루는 드라마는 조금 다릅니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 뭔가 잘못됐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생》은 IMF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IMF 이후 일상화된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태풍상사》는 기업 생존의 긴박함을 통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윤리를 보여줍니다. 《언더커버 미쓰홍》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와 투기를 통해 세기말의 불안을 재현합니다.
이런 서사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현재의 문제들—비정규직, 부동산 격차, 저출산, 안정 지향—이 모두 IMF 이후의 구조 변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들은 '왜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K드라마의 IMF 서사는 역사 재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자기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IMF는 평생직장 붕괴와 비정규직 확산을 가져왔고, 이는 《미생》 같은 작품의 핵심 배경이 됐습니다.
- 자산 격차 심화로 인해 부동산 집착과 생존주의가 한국 사회의 기본 정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 K드라마는 IMF를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불안의 기원을 설명하는 문화적 장치로 활용합니다.
- 레트로 미장센 속에서도 구조적 문제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향수와 비판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저는 지금도 IMF를 떠올릴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여덟 살의 제가 느꼈던 묘한 공기, 성인이 된 후 읽은 유서 속 '미안하다'는 말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청년들의 불안. 이 모든 게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이유는, 결국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K드라마가 IMF를 반복해서 다루는 것도, 우리가 《미생》을 보며 공감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과거를 기억해야 현재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불편하더라도, 아프더라도, 우리는 이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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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IMF, The Korean Financial Crisis of 1997—A Strategy of Financial Sector Reform. https://www.imf.org/en/publications/wp/issues/2016/12/30/the-korean-financial-crisis-of-1997-a-strategy-of-financial-sector-reform-2903
- 현대경제연구원, 외환위기 20년, 한국 경제의 공(功)과 과(過). https://www.hri.co.kr/upload/board/20171124155712%5B1%5D.pdf
- 한국학중앙연구원, 「금모으기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80908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 극복」.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imf.do
- 국가통계포털 KOSIS 100대 지표, 「자살률」. https://kosis.kr/visual/nsportalStats/detailContents.do?listId=D&statJipyoId=3669&vStatJipyoId=4840
- 통계청 KOSIS, 「비정규직 근로자 수」. https://kosis.kr/edu/visualStats/detail.do?ixId=1645&menuId=M_05
- tvN, 미생 공식 홈페이지. https://tvn.cjenm.com/ko/misaeng/
- Netflix, 스물다섯 스물하나 공식 작품 소개. https://www.netflix.com/kr/title/81517168
- tvN, 태풍상사 공식 홈페이지. https://tvn.cjenm.com/ko/typhoonfamily/
- tvN, 언더커버 미쓰홍 공식 홈페이지. https://tvn.cjenm.com/ko/undercoverMis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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